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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과거 법문 용선스님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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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과거 법문


조념염불의 중요성  


나무아미타불


신묘년 11월 6일 비록 비는 내렸지만 초여름처럼 따뜻한 날씨 속에 많은 불자님들과 함께 뜻 깊은 시간 갖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우리 중생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고통이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산고보다도 더 큰 고통, 그것은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을 빠져나오면서 받는 고통으로 산모가 받는 고통의 7~8배에 달한다고 하였습니다. 


갓난아이가 비록 말을 못하고 표현을 하지 못하지만 부처님 경전에 보면 아이가 엄마의 자궁을 빠져 나오는 것은 마치 거대한 몸집의 코끼리가 쥐구멍을 뚫고 나오는 격과 같아서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받는다 하였으니 중생들의 괴로움은 바로 탄생과 더불어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어서 점차로 늙어가면서 받는 고통, 병으로 인한 고통, 죽음으로 인한 고통, 살아가는 생애동안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인 지위로나 모든 구하는 바들이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받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지거나 이별을 하게되어 받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들과 한 곳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고통, 그리고 이 육신이 존재하는 한 항상 따라다니며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가려움과 아픔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 고통, 고통........


이렇게 탄생과 더불어서 시작된 우리의 고통은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되어지지만 오욕락에 도취된 우리 중생들은 잠깐의 즐거움들이 교차하면서 고통을 잊어버리고 행복감에 도취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스런 사바세계, 삼계의 바다에서 헤어날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끝없는 생사윤회 속에서 나고 죽기를 반복하게 되지요,


때론 사람으로, 

때로는 가축으로, 

때론 물고기나 벌레 같은 미물로, 

때로는 굶주리는 귀신으로,

때로는 끓는 물속에 산채로 삶겨지는 화탕지옥이나 칼과 창으로 찔리고 잘리워지는 칼산지옥, 불판에 던져져 지짐을 받아 하루에 만 번씩 죽었다가 다시 만 번을 되살아나 죽고 싶어도 맘대로 죽지 못하고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 지옥중생으로도........ㅜㅜ


이러한 끊임없는 고통스런 윤회를 반복하기에 부처님께서는 삼계 속에 윤회하는 우리 중생들을 불난 집에서 놀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철부지 아이들로 법화경에서는 비유하셨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 바로 욕계, 색계, 무색계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난 집>과 같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중생들을 불난 집에서 구해 내고자 자비로운 중생들의 어버이이신 부처님께서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우리 중생들이 놀이에 빠져 불난 집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자 중생들을 구제할 방편으로 불난 집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평소에 아주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들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흰 소의 수레에 온갖 보배로 장엄을 하여 아이들에게 


"얘들아! 여기 너희들이 좋아하는 양의 수레가 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사슴의 수레가 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흰 소의 수레가 있다."라고 소리치자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 수레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아이들이 불난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라고 법화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

양의 수레는 바로 성문의 경계요, 

사슴의 수레는 연각의 경계이며, 

흰 소의 수레는 보살의 경계인데, 


이러한 세 가지 수레는 모두가 방편으로 당장에 불난 집인 삼계 윤회 고에서 중생들을 건져내기 위한 방편으로 설하신 것이고, 진정한 가르침은 오직 불도를 성취하는 일불승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방편으로 설하신 성문, 연각, 보살승이 결코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삼승은 참다운 열반의 길이 아니기에 일불승, 즉 중생들에게 불도를 성취하도록 이끌기 위해서 먼저 방편으로 설하신 것이다. 라고 하셨으니, 일불승의 참다운 가르침이 바로 우리 불자님들이 수행하는 정토법문의 근본 취지와 하나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을 통해서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 바로 일불승의 길이며 진정한 발보리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발보리심이란 위없는 불도를 이루고자 마음을 내는 것이니, 극락왕생한 모든 중생들은 결코 뒤로 물러남이 없는 불퇴전의 경계에 들어가 마침내 위없는 불도를 이루게 되므로 정토법문을 받들어 믿어 지니고 열심히 염불하면서 왕생발원을 하는 모든 정토수행자들이 바로 발보리심을 한 것과 다르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극락정토에서 위없는 불도를 이루는 그 길이 바로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 참다운 의중을 드러내신 일불승의 가르침과 계합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불도를 이루는 것은 단지 나 혼자 잘 먹고 행복하게 잘 살고자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도를 성취하면 무시겁으로 인연 맺은 모든 부모형제, 사람으로 몸 받았을 때 뿐 만이 아니라 축생이나 천상인간 등 모든 중생으로 한량없는 수 억 만겁 생을 윤회하면서 인연 맺었던 모든 부모형제 친족 권속들을 모두 제도하여 다 불도를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극락왕생이 바로 곧 우리 대승 수행의 핵심이며, <자타일시성불도>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생에 기필코 생사윤회를 단절하고 극락왕생을 하여야만 하는 이유가 위에서 말씀드린 내용에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불자님들께서 평소에 염불하지 않고 평소에 왕생발원도 하지 않고, 온갖 세상살이와 오욕락에 도취하여 허송세월하다가 임종의 순간에 다달아서 갑자기 염불을 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오욕락에 도취되어 수행하지 않고 함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임종시에 전도된 의식으로 말미암아 온갖 사악한 삿되고 전도된 경계들이 나타나면 그러한 경계를 이겨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염불수행을 열심히 하면 꿈속에서 악몽을 꾸거나 할 때도 염불 한 마디로 모든 악몽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평소에 염불 수행을 하지 않았던 분들은 결코 그러한 악몽조차도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처럼 임종시에도 꿈과 같이 허망한 경계이며 전도된 경계가 우리를 윤회의 고통 속으로 끌고 가려할 때 평소에 염불하지 않았던 분들은 결코 전도된 경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지만 평소에 열심히 염불하셨던 불자님들은 염불의 습관에 의해서 단 한마디의 염불에도 바로 삿되고 전도된 경계들이 단박에 부숴져 버리고 불보살님의 영접을 받아서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기에 평소에 열심히 염불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들고도 어려운 전도된 경계가 나타나는 임종상황에 있어서 주변의 불자님들이 함께 모여 지성으로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르면서 조념염불을 하여주면 조념염불의 힘에 의해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도 쉽게 자신이 염불을 따라 할 수 있어 모든 전도된 경계들을 물리치고 왕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조념염불이 너무너무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우리 모든 불자님들이 조념회에 함께하여 서로 서로 손을 잡아 이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 모는 불자님들이 함께 극락왕생의 길에 합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나무아미타불_()_